[1편]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AI로 자서전을 만들기로 했다
명절이면 반복되는 풍경이 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깎는 시간.
엄마가 문득 옛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때 네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나, 4학년이었나..."
"아, 그게 언제였더라. 분명히 여름이었는데..."
말끝이 흐려집니다.
기억의 실마리를 잡으려다 놓치는 표정.
저는 그 순간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아, 그랬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더 물어볼 수 있었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어?" 하고 이어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수많은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명절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
서른 번? 스무 번? 아니면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물어볼 때 더 물어볼 걸.
기록해둘 때 기록해둘 걸.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자.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엄마는 더더욱 "내가 무슨 책을 써"라고 손사래를 치실 게 분명했습니다.
그때 AI를 떠올렸습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꺼낼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장기 기억은 쉽게 소멸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기억으로 가는 경로가 약해질 뿐입니다.
자주 꺼내지 않은 기억은 점점 접근하기 어려워집니다.
열쇠가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열쇠가 어느 서랍에 있는지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의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라진 게 아닙니다.
다만 꺼낼 기회가 줄어들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손주들이 바빠지고,
명절 모임이 짧아지면서
"그때 그 이야기"를 꺼낼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기억은 말해지지 않으면 굳어집니다.
굳어진 기억은 점점 더 꺼내기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본인조차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의아해합니다.
자서전을 쓴다는 것.
그것은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닙니다.
굳어진 기억을 다시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누군가 물어봐 주는 것.
"그때 어땠어요?"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잠들어 있던 기억이 깨어납니다.
AI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질문’을 만든다
AI 자서전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AI가 알아서 글을 써주는 거 아니야?"
"내 이야기를 입력하면 뚝딱 책이 나오겠지?"
아닙니다.
AI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엄마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아버지가 왜 그 직업을 선택했는지,
그 이야기는 오직 본인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AI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AI는 "대필가"가 아니라 "질문 설계자"입니다.
사람들이 자서전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글솜씨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서전 쓰세요"라고 하면 막막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물으면 어떨까요?
"초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누구였어요? 왜 좋아했어요?"
"첫 월급 받았을 때 뭘 샀어요?"
"결혼 전날 밤, 무슨 생각을 했어요?"
구체적인 질문은 구체적인 기억을 불러옵니다.
기억이 불러와지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AI는 이 질문을 만들어줍니다.
수십 개, 수백 개의 질문을.
그리고 그 대답을 모아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줍니다.
AI 자서전의 본질은 "글쓰기"가 아닙니다.
”회상을 시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완성본이 필요하다 : 파일이 아닌 '책처럼 읽히는 원고'
기억을 꺼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녹음 파일로 남겨두면 어떨까요?
언젠가 들어보겠지, 하면서 하드디스크에 저장해두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건 거의 다시 열어보지 않습니다.
사진첩을 생각해보세요.
스마트폰에 수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다시 보는 사진이 얼마나 될까요?
반면, 정리된 앨범은 다릅니다.
제목이 붙고, 순서가 정해지고, 한 권으로 묶인 앨범.
그것은 펼쳐보게 됩니다.
손주에게 보여주게 됩니다.
"이건 네 할머니 젊었을 때야"라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자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음 파일, 메모장 조각, 카카오톡 대화 기록.
이것들은 '자료'이지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군가 읽을 수 있는 형태.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이 있는 형태.
책처럼 펼쳐볼 수 있는 형태.
그래야 비로소 "남기는 것"이 됩니다.
AI 자서전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명확합니다.
"책처럼 읽히는 원고"를 만드는 것.
파일이 아니라 이야기를.
데이터가 아니라 서사를.
조각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기술 선택이 아닌, ‘왜 남기는가’로 시작하기
AI 자서전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어떤 AI를 쓸까, 어떤 앱을 쓸까가 아닙니다.
"왜 남기려고 하는가?"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합니다.
-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삶의 지혜가 있어서?
- 손주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
-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 나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어서?
이유에 따라 질문이 달라집니다.
질문이 달라지면 이야기의 결이 달라집니다.
결이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책이 됩니다.
기술은 그다음입니다.
도구는 목적을 따라가야 합니다.
저는 엄마의 자서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흩어지지 않게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누구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으신가요?
왜 남기고 싶으신가요?
에필로그: 첫 질문을 던졌을 때
결심을 하고 엄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엄마, 나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예상대로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내가 무슨 책을 써. 쓸 이야기도 없어."
"엄마가 쓰는 게 아니야. 그냥 이야기해줘. 내가 질문할게."
그렇게 첫 질문을 던졌습니다.
"엄마 어릴 때 제일 좋아했던 음식이 뭐였어?"
엄마가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뭘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질문을 잘못 던졌구나.
더 구체적이어야 하는구나.
다음 편에서는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기억이 열리는지.
AI와 함께 질문을 설계하는 방법.
부모님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분.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싶은 분.
"물어볼 때 더 물어볼 걸"이라는 후회가 있는 분.
함께하시겠습니까?
▶ 다음 편 : 좋은 자서전은 글이 아니라 '질문'에서 나온다